넷째 날 (12월 30일)
아침 일찍 재래시장에 나가 풀빵 같은 것을 사 먹었다. 어린 시절 목마 태워 시장에 데리고 가서 풀빵을 사주시던 아버지 생각에 잠깐 그리움에 젖었다. 바나나와 오렌지를 점심 대용 간식으로 샀다. 작은 바나나가 아주 맛있었다.
“100배 즐기기”를 들고 본격적으로 사원 순례에 나섰다.
왓춤콩은 숙소에서 2~3분 거리로 골목길을 조금만 걸어 들어가면 커다란 부겐베리아 나무 밑과 담장 밑에도 부처님의 입상을 세워 놓았다.
하고 잇는 모습을 직을 수 있었다. 빙그레 웃는 모습으로 순순히 사진 찍는 데 동의해 주었다. 폴라로이드를 가지고 오지 않은 것을 후회하게 되었다. 이럴 때마다 한 장씩 기념으로 찍어 드렸으면 좋으련만......
왓 파푸타밧은 아주 낡은 사원이었다. 높은 곳에 누각이 있고 스님들이 공부하는 곳으로 정자와 같은 모습의 집이 있었다. 기부금 (보시금)의 목록이 커다랗게 씌어져 탱화 옆에 붙어 있었다.
왕궁박물관을 향했다. 왕궁박물관은 오전엔 11시 30분이면 문을 닫고 오후 13시 30분에 다시 문을 열기 때문에 두 번에 나누어 보아야했다. 입장료는 3만낍이다.
왓 아함으로 갔다. 왓 아함은 왕궁박물관에서 나와 달라시장을 거쳐 푸시 호텔 앞을 지나 푸시산 뒤쪽으로 한참을 걸어서야 닿을 수 있었다. 가는 길에 초등학교를 보았는데 1학년 교실에 구구단표가 걸려 있었다. 9단가지만 있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14단까지였다. 돈 단위가 크니까 그래야 계산하기 편리해서 일까. 외우기 어려울 것 같았다. . 무지무지하게 오래된 보리수나무 두 그루가 있었는데 붉은 색 천으로 들러쳐 놓았다. 아담한 두 개의 탑이 조용한 인상을 풍기고 있었다.
다. 기도를 마친 스님이 물그릇을 주자 어린아이가 그 물을 차에 고루고루 뿌리는 것이었다. 그 차를 가지고 아마 투어 손님들을 태우고 영업을 할 모양이었다. 탓루앙을 찾느라고 눈망울이 초롱초롱한 여자 어린이들에게 일부러 말을 걸었다. 말을 알아듣지 못해 수줍어하더니 손짓으로 가르쳐 주었다. 돌아서서 가는 나에게 한참을 뛰어 쫓아와서 다시 뭐라 뭐라 성의껏 길을 가르쳐 주었다. 그네들이 귀엽고 고마워서 가게에 들어가 과자를 고르라고 했더니 10000낍짜리 비스킷을 골랐다. 흔쾌히 돈을 지불하고 예쁜 모습을 한방 찍고 헤어졌다.
왓 탓루앙은 왕실의 유해를 모시는 사원이다. 뒷뜰에는 여러 기의 제띠(탑)들이 서있고 씨싸왕웡 왕의 능묘도 볼 수 있었다. 한국어를 공부한다는 스님을 만났다. 그는 ㄱ, ㄴ, .....ㅏ, ㅑ, ㅓ, ㅕ,......쓸 줄 아는 것을 자랑했고 한국에서는 “스님”이라고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우리나라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다. 사진을 찍고 이메일과 주소를 받았다. 사진을 현상하면 보내 주고 싶다. NOVICE SICHANH WAT THAT LUANG LUANG PRABANG ( LAOS. P.D.R)
그의 성불을 빌어야 할까. 아니면 스님 생활을 마치고 근사한 어른으로 성공하기를 빌어야할까. 돌아오는 길엔 걷기 피곤하여 뚝뚝을 탔다. 어두운 거리에 나가 바나나 팬케익을 10000낍샀다. 오리털 침낭이 없으면 밤엔 몹시 추울 것 같다.
다섯째 날 (12월 31일)
인도네시아 단체 관광객인 듯했다. 길게길게 붉은 물결을 이루면 맨발로 시주를 받고 있었다. 그들의 맨발은 아름다운 맨발이었고 그 순간의 눈과 손은 자비의 손이었다. 노스님은 앞에 서시고 어린 스님은 맨 뒤에 서서, 그 경건한 모습은 정말 장관이었다. 받은 음식을 그 자리에서 얻으러 온 어린이들에게 나누어 주는 모습도 보았다. 사진만 찍고 있기가 부끄러워 시주에도 참가했다. 내가 어느 생에 다시 인연이 있어 이렇게 많은 스님들을 한자리에서 만날 것이며 조금씩이라도 시주를 해 볼 수 있을 것인지.
탓밧을 보고는 그냥 숙소로 돌아 갈 수 없어 그 감동을 지닌 채 그대로 칸 강가를 걸었다.
왓 아파이는 칸강과 가까운 곳에 있었다. 본당은 몹시 낡았으나 탑은 황금색과 붉은 색으로 조화롭게 만들어져 잇고 그 앞에서 외국인 한 사람이 기체조를 하는 듯한 모습으로 운동을 하고 있었다. 커다란 부겐베리아 나무 밑에도 부처님을 모셔 놓고 있었다. 나무통으로 만든 종을 보았다. 종을 치는 막대도 옆에 있는 것으로 보아 지금도 사용하는 것인 듯 했다.
아침 길가엔 이 나라 국화인 독참파 꽃이 송이채 덜어져 있었다. 우리나라 동백꽃처럼 떨어져 누운 모습도 아름다웠다. 달라시장에서 아침과 점심에 먹을 샌드위치를 15000낍에 사서 반으로 잘라 달라고 했다.
이곳 여행은 내게 자유를 주고 있었다. 배낭 속에서 꺼내 왕창 구겨진 옷을 입어도 좋고 화장을 안 해도 좋다. 아니 촌스럽게 입을수록 화장을 안 할수록 오히려 더 튀어 보이지 않아서 좋았다. 햇볕에 타는 것만 막을 수 있다면.......
칸강 건너에 있는 사원으로 가보려고 툭툭 기사와 흥정을 하고 있는데 그저께 만난 기사가 지나가다 아 는체를 한다 반가운 김에 그에게 다가가 왓 빠카로 간다고 했더니 자기가 안다고 타라고 한다. 칸 강 건너 사원 세 개를 보고 제자리가지 돌아오는데 5$ 주기로 했다. 툭툭 기사는 wat phak khan 으로 잘못 듣고 반도 끝에 있는 왓 파칸으로 데려다 주었다. 툭툭 기사의 실수로 덕택에 한군데 더 본 것이었다. 그는 자기 실수를 인정하며 칸 강의 씨싸왕웡 다리를 건너갔다.
“WAT TAOHAI”는 지도에도 100배 즐기기에도 없는 사원이었다. 숲 속에 위치해서 제법 운치 있는 곳이었다. 왓 탄루앙에 갔을 땐 스님 몇 분이 본당 앞의 용 조각에 금빛을 새로 입히고 있었다. 또 한 군데 사원 입구에 U.S.A 라고 써있었다. 미국과 관계있는 것일까. 미군들의 폭격으로 무너진 사원이 많다는데 그들이 세워준 것인지도 모른다는 추측을 했다. 스님들이 거쳐하는 곳은 보통 2층으로 되어 있고 아래층은 그냥 공간으로 기둥 분인 걸로 보아 더위를 피하거나 아니면 뱀 혹은 다른 동물들로부터 보호 받기 위한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툭툭 기사가 사진을 찍어 주겠다고 한다. “까올리 뷰티풀”하면서 즐거워한다.
왓 빠카는 불탄 채 무너진 모습으로 남아 있었다. 툭툭 기사가 "U,S,A 퓽~~~!!!!“ 하면서 미군 폭격에 맞아 무너졌다고 설명한다. 이 또한 이들이 아픔이다. 옆에는 사원을 새로 짓고 있었다. 길 공사를 하고 잇기 때문에 한 군데는 볼 수 없어 돌아왔다. 이름 모를 사원에 또 한 군데 들렀다. 하얗게 큰 탑이 있었고 이불도 널려 있었다.
툭툭 기사에게 5$과 팁 1$을 주고 ”왓 탓“에 다시 들렀다가 메콩강가로 걸어갔다. 어린 누나가 동생에게 책을 읽어 주었다. 가지고 갔던 공기놀이 세트를 주며 놀이하는 방법을 알려 주었다. 사진 찰칵!!!!
아름다운 왓마이 기둥을 보려고 다시 갔다. 스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마떼 까올리”라고 하면 “안녕하세요?” 하면서 우리말 인사를 한다. 우리나라 영화를 보았단다. 국력을 실감한다. 한류스타들 스포츠 선수들, 정말 멋진 외교관들이다.
왕궁박물관 앞에서 파란하늘과 흰구름이 배경이 되는 사진을 찍었다.
아!!! 내가 그토록 찾던 “왓 파후악”이 바로 앞에 있었다. 푸시산을 오를 때 몇 계단을 오르면 바로 옆
에 작고 아주 낡은 사원이 있는데 그것이 “왓 파후악”일 줄이야. 몇 사람 한테 물어 보아도 모른다고 했는데...... 유리창 교체와 천정 교체를 한다고 시주를 받고 있었다. 시주함에 돈을 넣고 옆에 놓인 장부에 자기 스스로가 이름과 시주금을 적게 되어있었다. 꽤 투명한 기부금 문화였다. 보리수 잎에 부처님 모습을 그리고 있는 사람으로부터 나무 조작에 그려진 코끼리 그림을 25000낍에 사면서 그림에 싸인을 해달라고 했다. 짐이 되더라도 기념으로 사고 싶었다.
2010년 12월31일 라오스 루앙프라방 푸시산에서 마지막 일몰을 보고 싶어 푸시산 꼭대기에 있는 왓좀씨로 올라갔다.
칸 강 쪽을 내려다보면 멀리 산티제띠가 보이고 바로 아래 왓 아파이가 보인다. 2010년 마지막 날 내 삶에서 또 하나의 도전으로 시작한 혼자만의 배낭여행 닷새째, 기원할 것이라고는 오직하나 뿐이다. 내려다보이는 루앙프라방은 유럽의 어느 도시 같다. 프랑스의 영향 때문이리라.
해가 넘어가자 몇몇 사람들은 손뼉을 쳤다. 잠깐의 황홀한 일몰을 보고 야시장에서 한국 여행자 두 사람과 저녁을 먹었다. 코끼리 그림이 수놓인 작은 아기 신발을 기념품으로 샀다. 20000낍을 부르는데 1$주겠다고 했더니, 1$이 얼마인지 모른다며 순박한 얼굴을 하기에 오히려 미안했다. 만낍에 샀다.
내일 아침 8시 픽업(. 픽업하러 오기 위해서 예약할 때 게스트하우스 이름도 적는다) 9시 출발. 짐을 챙긴다. 오늘 아침엔 본 탓밧의 행렬, 그 존경과 나눔의 모습을 오래오래 잊지 못할 것이다. 꼭 와 보고 싶었던 이곳 루앙프라방 안녕, 만약 내 생에서 기회가 된다면 이곳에서 오래 머무는 여행을 하리라.. 그러나 오토바이랑 차들이 더 많이 생겨 오염이 심해진다면 이 아름다움을 그리워하며 실망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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