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통일신라시대에 건립된 석조 부도로 남아있는 것 가운데 형태가 완전하며
건조 연대가 뚜럿한 것 8기 중에서 친견한 것들을 포스팅해 봅니다.
부도는 스님의 사리를 모신 것입니다. 요즘은 그 부도의 이름이 별도로 전하는 경우 외에는 승탑이라는 명칭으로 통일됩니다.
1. 염거화상탑 국보 제104호 국립 중앙박물관
국보 104호 傳 원주 흥법사지 염거화상 탑
전(傳)흥법사 염거화상탑은 원래 위치가 강원도 원주시 지정면 안창리 흥법사지로 기록되어 있지만, 증명할만한 자료가 부족하여 현재는 탑 이름 앞에 전(傳)자를 붙여 부르고 있다. 원래의 위치를 알 수 없는 이 탑은 탑골공원에 있던 것을 경복궁으로 옮겨 놓았다.
도의선사의 제자인 염거화상(?∼844)은 주로 설악산 억성사에 머물면서 선을 널리 알리는데 힘쓰다가, 체징에게 그 맥을 전하여 터전을 마련한 뒤 844년에 입적하였다.
염거화상은 구산선문 중에서 가지산문의 2대 선사입니다.
2. 곡성 태안사 적인선사조륜청정탑 보물 273호 경문왕 원년 861
구산선문 중에 동리산문을 세운 혜철 스님의 사리탑입니다.
태안사 또는 대안사라고 해요. 삼국시대에 이미 스님들의 사리를 봉안하는 일이 있었지만 "부도"라는 말은 872년에 세운 이 탑에 처음 나타나는 기록이 있습니다.
"起石浮屠(돌을 세워 부도를 지었다)"
3. 화순 쌍봉사 철감선사탑, 국보 57호, 경문왕 8년 868
도윤스님의 호는 쌍봉이고 철감선사는 그 분의 시호입니다. 그의 제자 절중이 철감선사의 가르침을 받들어 사자산문을 열었어요. 사자산문의 개산은 영월 흥녕사(지금의 법흥사)로 알려져 있지요.
철감선사의 사리탑은 가장 아름다운 승탑으로 평가됩니다. 조각공이 독실한 신도였거나 철감선사님을 너무나 존경한 분이 아니라면 이렇게 아름다운 승탑을 조각하기 어렵다고 하네요.
8각으로 이루어진 모습입니다. 사리가 모셔진 탑신은 여덟 모서리마다 기둥을 새기고, 각 면마다 문짝모양, 사천왕상, 비천상을 아름답게 조각했어요.
8마리의 사자들의 마치 구름 위에 앉아 있는 모습입니다. 저마다 자세는 다르지만 시선은 앞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어요.
지붕돌의 낙수면에는 기왓골이 깊게 파이고 각 기과의 끝에는 막새기와로서 꽃문양이 아름답고 처마에는 서까래도 사실적으로 표현되었어요. 윗돌의 아래에는 연꽃무늬를 두르고, 북교 낙원에 사는 가릉빈가 여러가지 악기를 타는 모습이 새겨져 있지요.
4. 보림사 보조선사창성탑, 보물 157호, 헌강왕 6년 880
도의선사는 선의 전했으나 수용되지 않자 설악산에 머물면서 염거화상에게 선법을 전했고, 염거화상은 체징에게 전하자 체징은 당나라의 여러 선사들을 찾아뵙고 귀국하여 장흥 보림사를 창건하고 가지산문을 일으켰어요. 체징 보조선사의 탑입니다.
5. 봉암사 지증대사적조탑, 국보 315호 헌강왕 9년 883
2010년에 국보로 지정되었죠. 구산선문의하나인 희양산문 도헌국사 지증대사 탑비입니다
.( 문화재청 설명입니다)
이 석비는 구산선문(九山禪門)의 하나인 희양산문(曦陽山門)의 개창자인 도헌국사(道憲國師) 곧 지증대사(智證大師)의 탑비로서, 비석의 크기나 귀부와 이수의 조각수법 등이 통일신라 말기를 대표하는 전형적인 양식과 기법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비문에는 신라의 불교사를 3시기로 나누어 약술하고 도신(道信)-쌍봉(雙峰)-법랑(法朗)-신행(愼行)-준범(遵範)-혜은(慧隱)-도헌(道憲)으로 이어지는 도헌국사의 법계(法系)를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어서 신라하대의 불교사 특히 선종사(禪宗史) 연구의 중요한 1차 사료가 된다. 이 비는 당대의 대학자이며 문장가인 최치원(崔致遠)이 비문을 지은 것으로 그가 비문을 지은 대숭복사비(大崇福寺碑), 보령 성주사지 낭혜화상탑비(국보 제8호), 하동 쌍계사 진감선사탑비(국보 제47호)와 함께 4산비문의 하나로 일컬어지는 탑비로서, 그 학술적 가치가 일찍부터 높이 평가되어온 것이다. 이 비에는 탑비를 세운 연대가 밝혀져 있을뿐 아니라, 비문을 쓰고 각자(刻字)한 사람이 분황사의 승려 혜강(慧江)임이 밝혀져 있어서 한국 서예사 연구에도 중요한 자료가 된다. 저자 최치원은 여타 전기자료와는 달리 지증대사의 일생 행적을 여섯 가지의 신이(神異)한 사실〔육이(六異)〕과 여섯 가지의 훌륭한 행적〔육시(六是)〕으로 정리하고, 예를 들어가며 구체적으로 기술하였는데 이는 다른 비문에서는 볼 수 없는 전기 서술의 한 특징이다.
한편, 이 비문에는 신라 하대의 인명, 지명, 관명, 사찰명, 제도, 풍속 등 많은 정보를 담고 있어 신라사 연구의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특히 신라의 왕토사상(王土思想) 및 사원에 토지를 기진(寄進)하는 절차를 알려주는 내용이 담겨 있으며, 신라 말 선종 산문의 개창이 지방 유력자의 후원에 힘입어 이루어졌음을 알려주는 명확한 기록이 비문 중에 밝혀져 있고 비 건립의 후원자 또한 명확하게 밝혀진 것도 이 비가 갖는 의의를 높여 준다. 또 사원 운영의 주체인 사직(寺職)의 구체적인 모습이 확인되는 신라 유일의 비라는 점도 의의가 크다. 뿐만 아니라 이 비문에는 백제의 소도(蘇塗)에 대한 기록이 있는데 이는 백제 소도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는 국내 유일의 기록이다.
6. 실상사 증각대사응료탑, 보물 38호, 9세기 후반
산문을 형성한 것은 실상산문이 최초입니다.
7. 실상사 수철화상능가보월탑, 보물 33호 진성여왕 7년 893
8. 봉림사 진경대사보월능공탑, 보물 362, 국립중앙박물관 뜰에 있습니다.
구산선문의 하나인 봉림산문의 개산지였던 봉림사는 현재 창원 부근이라고 하는데 절터의 형태가 거의 남아있지 않다고하여 가보지 못했네요. 이 승탑만이 제자리를 떠나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 모셔져 있군요. 진경대사 심희 스님은 봉림산문 개산조인 현욱스님의 제자입니다.
신라 헌덕왕(809~826) 이후에 선종이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도의와 홍척이 마조 도일의 제자 지장의 선법을 전해 받고 귀국하여 가지산문(가지산문이 정식으로 형성된 것은 3대 체징스님 때였다)과 실상산문(우리나라 최초의 산문이다)을 열었다. 계속 유학승들이 중국에서 귀국하면서 9산선문을 이루었다. 희양산문은 우리나라 내에서 형성되었다.
구산선문~~~~~
가지산문(보림사)- 도의, 염거, 체징(보조선사)
실상산문(실상사)- 홍척(증각대사), 수철
동리산문(태안사)- 혜철(적인선사), 여??, 윤다
희양산문(봉암사)- 도헌(지증대사), 양부, 궁양
봉림산문(봉림사)- 현욱, 심희(진경대사), 찬유
성주산문(송쥬서)- 무염, 신광, 현휘
사굴산문(굴산사)- 범일, 행적
사자산문(흥녕사=법흥사)- 도윤(철감선사), 절중
수미산문(광조사)-이엄, 차광
1조 보리달마, 2조 혜가, 3조 승찬, 4조 도신, 5조 흥인, 6조 혜능
마조, 석두 ⇒지장, 회휘, 보철, 제안, 남천
'마음 닿은 곳'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천 차이나타운 (0) | 2016.11.11 |
---|---|
서해 최북단 백령도 1 (0) | 2016.10.23 |
국립나주박물관 (0) | 2016.10.08 |
국립광주박물관과 담양개선사지 석등 (0) | 2016.10.08 |
오죽헌 오대산사고본 조선왕조 실록과 의궤 전시회 관람 (0) | 2015.09.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