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

김천 직지사

연꽃마을 2013. 4. 29. 15:37

 

군위에서 직지사까지는 70킬로미터 정도 된다(네이버 검색)

국보 208호 도리사 세존사리탑 금동사리기를 보기 위해 가야하고 가고싶다

 

우와!!!! 동국제일가람 황악산문

 

 新綠! 새로운 푸르름,

새순이 돋아나고 새 초록이 움트는 걸 가장 아름답게 보는 순간이다.

 

 일주문이다. 일주문이 속세와 경계를 긋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왼쪽과 오른쪽 기둥의 나무가 조금 달라보인다.

 다음은 퍼온 내용~~~

일주문--壬辰倭亂때 화를 면한 建物.

현판인 黃岳山直指寺는 조맹부(1254-1322)의 글씨임.

현판 글씨로 인해 벼슬을 제수받았던 정조때 명필 송하(松下) 조윤형(曺允亨)의 필체로 유명함.

들어서는 순간 수미산으로 들어선다하여 자하문(紫蝦門)이라고도 함.

왼쪽은 싸리나무, 오른쪽은 칡 줄기로 되었다고 했으나 2011년 복원 공사를 위해 해체를 하고 기둥 목재의 DNA 검사를 하니 두 기둥 모두 느티나무로 밝혀짐.

나무의 자람의 최대한 보호하면서 아름다운 담장을 쌓았다.

넓은 세계로 들어서는 대양문, 네 개의 벽화가 앞뒤에 그려져있다

해골에 고인 물을 마신 원효대사 이야기

해골에게 절을 한 부처님 이야기

부처를 잡아먹으려는 마왕(마귀?)

부설거사 이야기~~~~젤 아래 퍼온 이야기를 옮겼다. 병은 깨졌으나 물은 매달려 있다

새로 지은 건물이다 이런 문이 참 좋다 정겹고 예쁘다 특히 문지방~~~~

금강문은 불법을 훼방하는 사악한 세력이 사찰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금강역사가 지켜서고있는 문이다

 금강문은 실질적인 사찰의 대문 기능을 가지고 있다

 

 

 

 

푸른 색 단청이 아름다운 이 건물은 만덕전이다.

萬德殿--國際會議場.

부처님의 만덕(萬德)을 선양하기 위해 세운 전각으로 국제간의 불교 교류와 불교 연수를 위한 회관으로 1994년 완공된 총 361평의 거대한 이 건물은 일명 불교연수회관으로 불리며, 한번에 2천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이곳은 각종 현대식 편의 시설을 갖춘 국내 최대의 수련장이다. 현판은 현존하는 중국 4대 명필의 일인자인 중국 불교협의회 회장 조박초(趙樸初) 거사의 필적이다.

 

 

 

만덕전 옆에 있는 남월료 건물이 보인다 웅장한 돌담을 보시라~~~

 

부설거사 이야기 : 나의 부처님 공부라는 블러그에서 퍼왔음

우리나라 절에서 부르는 신도들의 명칭이 있다.  여자신도를 보살님이나 보사님이라 부르는데 보살이란 보리살타(보리: 깨달음, 살타:중생)의 준말로 깨달은 중생, 깨닫고자 하는 중생으로 풀이된다.  깨달은 중생은 문수. 보현. 관음. 지장 보살님들을 말하고, 깨닫고자 하는 중생은 우리들을 일컬으며, 여신도들을 부르는 보사님은 지킬 보(保) 절 사(寺)해서 절을 지켜 나가는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쓰인다.  남자 신도들은 처사님이나 거사님으로 부르는데 처사는 속가 마을에 사는남자들을 일컬음이고 거사는 불도를 닦는 속가 남자를 말함이다.  그런데 이 거사들 중에 스님네들 못지않게 수행을 잘하여 세상을 밝힌 분들이 계신다.  대표적인 예로는 인도의 유마 거사, 중국의 방 거사, 그리고 우리나라의 부설 거사가 있다. 

  부설 거사는 본래 스님이었다.  신라 선덕여왕 때 사람으로 속가 성은 진씨(陳氏)이고 이름은 광세(光世)요 불국사에 15세 때 출가하여 부설이라는 법명을 받게 된다. 

  함께 어울려 공부하는 도반(道伴)으로는 영희(零熙)와 영조(零照)스님이 있었다.

 지리산 법왕봉에 묘적암이라는 암자를 짓고 솔잎과 칡뿌리로 목숨을 이어 가며 수도를 해 나갔다.  그러나 십수 년이 흘러도 깨달음의  오대산 문수도량으로 떠나기로 결정한다.

  문수암으로 가는 중에 구무원의 집에서 머물렀다. 그 집 딸 묘화가 부설스님을 사모하여 결혼하기를 원하자 부설스님은 고민끝에 결혼했다

 등운과 월명 두 아이를 낳고 살다가 부설거사는 못다한 불법을 공부했다

다시 만난 영희 영조 두 도반과 법력을 시험하기위해 물이 가득담긴 병을 깨뜨리기로 했다. 두 스님 것은 당연히 깨어졌고 부설거사의 병도 깨어졌지만 물은 굳어 매달려 있었다. 부설은 열반에 들었고  방에서는 그윽한 향내가 진동했고 하늘에선 우담바라 꽃비가 내렸다.  지리산 묘적암에 사십구제를 지내니 호남 일대의 선비들과 각 사찰의 대덕스님들이 구름같이 모여들어 그의 자비행과 도행을 칭송했고 부설 거사를 부설 대사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아들 등운과 딸 월명도 머리 깎고 스님이 되니 등운은 계룡산에 등운암을, 월명은 부안 변산에 월명암을 짓고 수행하여 훌륭한 스님들이되었고, 묘화는 자택을 부설원이라는 절로 고쳐 수행하다 백이십 살에 극락왕생하게 된다.   부설 거사! 아니 부설 대사.  승속에 걸리지 않고 생사 없음에 노닐다 간 대 자유인, 진정한 수행인!   ㅡ 석용산《여보게, 이땅에 다시 오려나  그리운사람있다면······》중에서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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