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석사를 처음 간 것은 고3 여름방학이었다.
무슨 배짱에 담임선생님께 기차 할인권까지 받아서 친구랑 네명이 영주에 갔다
버스를 갈아 타고 부석에서 내려
'바랑 메고 걸어가는 스님을 따라가면 부석사로 가시겠지'
하며 무조건 따라 갔다.
행운이었다. 그분은 만난 것은......그 스님이 들려주신 부석사에 대한 이야기는 두고두고 "그리운 부석사"가 되게 해 주었다.
뜰 浮 돌 石! 돌이 떠 있게 된 이야기, 소백산맥과 태백산맥이 갈아지는 고셍 봉황이 알을 품는 산세에 부석사가 자리하게 된 선묘와 의상대사의 이야기, 108개의 계단과 중생을 고루 구한다는 의미의 크고 작은 돌로 쌓은 축대, 선묘정, 서산대사와 사명당의 이야기 등등......
우리 나라 절 중에서 유래를 가장 잘 아는 절이 그곳이 되어 버렸다.
그 아름다운 추억이 사라질까 두려워 다시 찾아갈 용기가 없었으나
17년이 지나 어느날 다시 찾아 갔을 때도 부석사는 그 자리에 변함없이 있어 주었다.
"사무치는 마음으로 가고또가고 가고 또 간다" 는 어느 분의 표현이 멋지다.
전생에 나는 부석사에서 한 철쯤은 살지 않았을까 싶다.
국보 17호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앞 석등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석등이라고 누군가가 말했다.
내가 만약 다시 공부를 시작한다면 석등에 대해 연구해 보고 싶을 정도로 나는 석등에 대해 관심이 많다.
국보 18호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아마 부석사를 가보고 싶었던 것은 우리나라에서 가장오래된 목조건물이라고 중고등학생 때 배웠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다시 밝혀진 것은 봉정사 극락전이 더 오래된 건물이라고 한다. 이 무량수전의 배흘림 기둥은 정말 일품이다. 최순우 선생의 "배흘림기둥에 기대어 서서"란 책은 부석사를 더 그립게 한다.
국보 45호 영주 부석사 소조여래 좌상
소조불상이란 나무로 골격을 만들고 진흙을 붙여가면서 만드는 것인데, 이 불상은 우리나라 소조불상 가운데 가장 크고 오래된 작품으로 가치가 매우 크다. 고려초기의 불상으로 손모양은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으로, 무릎 위에 올린 오른손의 손끝이 땅을 향하고 있다. 불상을 모신 장소가 서방 극락정토를 다스리는 아미타불을 모신 극락전이라는 사실과, 부석사에 있는 원융국사탑비 비문에 아미타불을 만들어 모셨다는 기록이 있는 점으로 보아 이 불상은 아미타불임이 확실하다.부처의 몸에서 나오는 빛을 상징하는 광배(光背)는 불상의 뒤편에 나무로 따로 만들어 놓았는데, 가장자리에 불꽃이 타오르는 모양을 표현하였다. 머리광배와 몸광배는 원형으로 표현하고 그 안에는 화려한 꽃무늬를 장식하였으며, 작은 부처를 달았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
국보 19호 영주 부석사 조사당
조사당은 사명당이 이곳에서 공부를 했던 곳이라고 했다. 일본 사람들이 후대에 사명당과 같은 인재가 나올까 두려워 불을 지르기도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뜰에 볼품없이 만들어진 철책은 의상대사 지팡이에서 자라는 나무가 비를 맞지 않고 도 잘 자라다가 새끼가지가 자라고 있는 것을 보호하고 있다.
전문가의 설명에 의하면 조사당 건물은 옆 모양의 비례가 아름답다고 한다
국보 46호 영주 부석사 조사당 벽화
이 벽화는 부석사를 창건하고 우리나라에서 화엄종을 처음 시작한 의상대사를 모시고 있는 부석사조사당 안쪽 벽면에 사천왕과 제석천, 범천을 6폭으로 나누어 그린 그림이다.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벽화란다.
부석사 가는 길에 소수서원을 만나는 것도 행운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
가을이면 은행나무잎이 노랗게 물들어 아름답고
소수서원의 건물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는 것도 즐겁다
국보 111호 안향 초상
회헌(晦軒) 안향(安珦)(1243~1306)은 고려(高麗) 후대(後代)의 명신, 학자로서 충렬왕대(忠烈王代)에 고려유학제거(高麗儒學提擧)가 되어 왕(王)과 공주(公主)에 호종(扈從)하여 원조(元朝)에 들어갔을 때에 《주자전서(朱子全書)》를 필사(筆寫)하여 주자학연구(朱子學硏究)를 시작하여 후에 경사교수도감사(經史敎授都監使)로 임명되어 유학을 크게 진흥하여 한국(韓國) 주자학(朱子學)의 원조가 되었다.소수서원에 있는 이 초상화는 선생이 세상을 떠난지 12년 후인 고려 충숙왕 5년(1318) 공자의 사당에 그의 초상화를 함께 모실 때, 1본을 더 옮겨 그려 향교에 모셨다가 조선 중기 백운동서원(후에 소수서원이 됨)을 건립하면서 이곳에 옮겨놓은 것이다. 선생의 초상화는 현재 전해지는 초상화 가운데 가장 오래된 초상화로, 고려시대 초상화 화풍을 알 수 있어 회화사 연구에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귀중한 작품이다.
'國寶 바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느 여행 길에(국보 12건-4,5,55,64,11,33,42,56,314,49,52호) (0) | 2012.06.19 |
---|---|
강원도에서 (국보7건-51, 36,221,48,292,122,63) 2015.3. 수정 (0) | 2012.06.07 |
경주에서 2 (국보 8건- 275,29,87,88,188,189, 190, 112호) (0) | 2012.06.05 |
경주에서 1 (국보9건-31,29,21,22,23,24,25,26,27,31호) (0) | 2012.06.05 |
간송미술관 국보들 (12건-65,66,68,70,71,72,73,74,135,149,270,294) (0) | 2012.06.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