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하루되는 날
G선생은 차웅따로 간다면서 떠나고 나는 시내버스를 타고 양곤시내를 투어하기로 작정했다. 슐레 옆에서 보터따웅 파고다를 가려고 했다. 시내지도를 들고 있는 나에게 그들도 나도 짧은 영어는 잘 통하는 것이 신기했다.
마침 1부터 10까지 미얀마 숫자를 읽고 쓸 수 있도록 준비한 것은 참 다행이었다. 시내버스 번호도 읽을 수 읽고 그들이 48번 시내버스를 "four, eight" 라고 가르쳐주면 오히려 내가 “레, 씻?” 하면서 그들의 꼬불꼬불한 숫자를 써보여주면 아주 기뻐하면서 친절하게 버스 타는 곳까지 데려다 주었다.
작은 48번 버스를 타고 보터따웅으로 가는데 스피어맨(시내버스에는 운전기사 말고
승무원 남자가 한두명타고 있는데 가는 곳도 아주 빨리빨리 외치고 차비도 받으니까 우리는 그들을 '안내군"이라고 했는데, 미얀마사람에게 물었더니 '스피어맨'이라고 했다.)이 차비를 받지 않았다. 두 번이나 내밀었지만 괜찮다고 손을 내젓고는 아주 근사한 파고다 앞에서 내려 주었다. 보터따웅(보=군인, 터다웅=1000)파고다는 1000명의 군인들이 인도로부터 이송해온 부처님의 머리카락이 중앙에 모셔져있고, 그 후 8명의 승려가 가지고 온 보물들이 파고다 내에 전시되어 있었다. 온통 황금으로 장식된 벽은 중앙을 향하게 만들어진 기도실이 있는데 스님과 신도들이 무한한 경배를 드리고 있었다. 입장료가 있다고 했지만 아무도 달라고 하지 않았다. 기도하는 사람과 청소하는 젊은이들로 경내는 몹시 활발한 움직임으로 가득차 있었다.
보터다웅 파고다에서 나와 다음으로 가고 싶은 곳이 짜욱 따지 파고다(Chauck Htat Gyee Pagoda)였다. 다시 시내버스 타는 곳에서 물으니 이번에는 모녀가 안내해 주면서 나와 함께 버스를 타주고 버스에서 자리도 잡아주고, 차비까지 계산하는 것이었다. 감사의 표시로 우리나라 2색 볼펜을 선물했다. 그녀는 나를 짜욱 따지 앞에서 내리게 하고는 자기의 길을 갔다.
거대한 와불상은 인간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가를 보여 주었다. 누워계신 부처님의 발바닥에 108가지 의미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마침 음력으로 보름날이라서 법회가 열리고 있었다. 큰스님의 법문을 알아들으면 얼마나 좋으랴.
다음은 거퍼예 파고다(Kaba Aye Pagoda)를 가려고 시내버스를 타는 곳에 갔다. 학생들이 “one, seven, four"라고 일러 주었다. 그들도 그 버스를 타고 가다가 다음 정류장에 내리라고 하면서 기사에게 뭐라고 일러 주고는 내렸다. ”How much is it?" 버스비를 물었으나 스피어맨은 웃으면서 또 차비를 받지 않았다. 처음에는 외국인에 대한 친절일까 했는데 점점 영어 때문에 못받는 것인가 싶어 미안했다. 1000ks을 내밀고 거슬러 주기를 바랬으나 잔돈을 잔뜩 손에 쥐고 있으면서도 그들은 그러지 않았다. 순박하기 이를 데 없는 이 사람들에게 나는 빚을 지고 다니는 기분이었다. 거퍼예 파고다를 잘 관람하고 근처에 있는 보석박물관(Gems Museum)에 갔다. 입장료 5$를 내었지만 3층까지 보석마트이고 한층만 박물관이었는데 보석에 별로 흥미가 없는 나는 별로 볼것이 없었다. 보석으로 치장된 작은 코끼리에만 관심이 좀 갔을 뿐....... 나와서 물 한 병 200ks에 사고, 43번 슐레행 버스를 타고 돌아왔다. 슐레로 오는 43번 버스는 순환버스 같았으며 제일 많이 눈에 띄었다. 돌아오는 버스에서는 버스비 100ks을 냈다. TOKYO 빵가게에서 빵 3개 가지고 들어와서 먹고 쉬었다. 미안마 돈 짯이 많이 남았기에 다시 $로 환불해야할 것 같다. 한국에서 오늘 온 사람들은 1$=755ks, 또는 720ks에도 환불했다고 한다. 늦은 오후 보족마켓 구경을 할까 싶었으나 매월15일은 그곳이 쉬는 날이라서 그냥 쓴 돈과 남은 돈을 정리했다. 내일은 레인보우호텔로 옮겨야지 마음먹었다. 피곤한 몸도 좀 쉬고 한국 음식이 쬐끔씩 그립기도 하다.
열두째 날
43번 중에서도 그 방향으로 가는 것과 아닌 것이 있는 모양이었다. 어찌됐든 레인보우호텔 표지가 보이는 곳에서 내려 천천히 걸어 내집으로 가듯 호텔을 찾아갔다.
예다나님이 아침을 한식으로 다시 더 먹으라고 하면서 반겨 주었다. 다시 오길 정말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아침 스텝들의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아마 주인은 모르는 일일 것이다. 어디서나 사업을 하려면 종업원들을 잘 만나야할 것인데 말도 잘 안 통하고 문화도 다른 외국에서 뭐 그리 쉬울까.....
며칠만에 보는 한식으로 아침을 맛있게 먹고 방을 잡고 조금 쉬다가 예다나님이 일러주신대로 써야산프라자에 가니 목공예품이 아주 많았다. 나무 조각 잔받침을 두 가지 샀다. 그곳의 가게 여주인들이 차를 대접해 주었다. 물건값 깎은 것이 미안했다.
마하시수행센터를 가보기로 하고 한참을 걸었는데, 내가 두고온 가이드 북을 가게에 있던 한 여인이 아주 멀리까지 쫓아와서 전해 주었다. 어느 세월에 인연이 있어 그들을 또 만날 것인가?
“마하시 위빠사나”가 어디에 있느냐고 물었지만 잘 모르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꼭 가보고 싶은 곳이어서 물어물어 찾아갔는데 많은 사람들이 수행을 하고 있었다. 많은 건물에는 수행자들이 머물고 있는 듯 했다. 모두 친절하고 도와 주려고 애썼으며 일반인들과 스님들이 수행하는 곳으로는 가장 큰 곳이라고 했다. 버강에서 본 동굴 속의 수도원과는 달리 현대식 건물에 대단위 단체 수행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길도 잘 모르면서 아는 체한 택시 기사는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호텔을 찾았다. 1000ks.
4시쯤 쉐다공 파고다에 갔다. 레인보우에서 걸어가도 될 정도의 거리에 있다. 예다나님이 따라나와 길을 안내해 주었다. 반시장 길을 걸어 이것저것 구경했다. "예술가의 눈물"이라며 소개해준 꽃은 너무나 아름답다. 어느 예술가가 나는 왜 이렇게 예쁜 작품을 못 만들까 하고 눈물을 흘렸다는 꽃...... 레인보우 부근에는 숨어있는 볼거리가 많이 있었다.
쉐다공파고다 동쪽 문을 들어섰다. 제일 아래 계단에서 신발과 양말을 벗고 허리를 깊게 굽혀 머~~~얼리 계시면서도 내 마음 속에 계시는 부처님께 예의를 표했다. 12개씩 여러 번, 참으로 긴 계단을 올라서 첫 번째 부처님을 뵈었다. 내 무릎이 건강할 때 같으면 넙죽 108배를 올렸을 것이다.
눈길이 어디부터 가야할지 모든 것이 예술품이고 보석이다. 나는 저녁 9시가 가깝도록 경내에 있었다. 낮의 모습과 밤의 풍경을 모두 보고 나오려고 마음먹었기에..... 경내에서 친절한 사진사가 사진도 찍어 주었고, 마하간디종과 Tharyarwaddy bell(=띠야워디 종)에 대하여 알려 주기도 했다.
어두워져서 다시 만나게 된 그는 쉐다공 파고다 정상에 73캐럿 다이아몬드가 일곱 가지 색깔로 보인다는 곳으로 나를 안내했다. Red, Yellow, Green, Blue...... 위치를 조금씩 옮길 때마다 정말로 탑 꼭대기에 박힌 보석은 다른 색깔로 반짝이고 있었다.
와! 진짜 신기했다. 나는 여기서도 이들을 만난 것이 행운이었다. 그리고 또 한사람 한국어 공부를 한다는 18살 소년이었다. 엄마한테 혼나고 집을 나왔다는 그에게 오늘은 꼭 집으로 돌아가라고 말하며 간식을 사주고 몇 시간동안 함께 다녔다. 어느 곳이든 청소년기는 질풍노도의 시기라는 걸 알겠다. 그는 한국말로 이야기하는 것을 아주 즐기면서 “내가 잘 몰라서 미안해요.” 라는 말을 수없이 했다. 학원비가 너무 비싸서 못가고 혼자서 책과 드라마로 한국어 공부를 한다는 그는 참 대단한 소년이었다. 잘 자라서 한국과의 관계에 좋은 역할을 하기를 빌었다.
쉐다공 파고다의 입장료 5$이라고 했지만, 어디에서 내는 지도 모르겠고, 달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왜일까? 그들은 왜 나에게 입장료를 내라고 하지 않았을까? 외국인인 것은 분명한데 자기네 부처님께 한없는 경의를 표하는 내가 아마 갸륵해 보였기 때문일까? 오늘 하루 동안 나는 미얀마인들과 가깝게 부딪쳐 보았으며 순수한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를 느껴보았고, 미얀마에 온통 빚을 지고 다닌 기분이었다.
호텔로 돌아오니 뜻밖에도 G선생이 와 있었다. 그녀는 차웅따를 포기하고 삐이까지 기차를 타고 갔다가 잠깐 구경하고 다시 버스로 곧장 돌아왔다는 것이다. 거의 30시간만에 우리는 다시 만난 것이다. 항공료가 비싸다고 10~14시간씩 버스만 고집하며 다닌 그녀가 레인보우로 올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예다나님은 그녀가 다시 온 것에 대하여 몹시 반가워했다. 우리는 서로 다른 방에 들어 행복한 저녁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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