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닿은 곳

전북 정읍 무성서원 (유네스코 세계유산 한국의 서원 8)

연꽃마을 2023. 4. 13. 11:39

2023. 3. 29한국의 서원이 세계유산으로서의 가치는 무엇인가요?  ~ 서원 방문 리플렛의 내용입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9개의 서원은 조선의 성리학 교육과 사회적 확산을 주도한 교육기관이자 무형적이고 역사적 독특성의 탁월한 증거다. 성리학자들은 교육에 필요한 기능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교육시스탬과 물리적 시설을 완성하였다. 그들은 자신이 존경하는 지역의 인물을 제향함으로써 후세대에 본보기를 제시하고 강학을 통해 학문을 계승함으로써 학맥을 형성하였다. 또한 한국의 서원을 사회교화와 정치 등 각종 활동의 근거지로 활용하면서 성리학을 전 사회적으로 확산하는 데 기여하였다.

정읍은 아직 벚꽃이 피지 않았습니다. 구례나 하동쪽보다는 일주일 이상 늦게 피는 것 같습니다.

마을 집들 사이에 홍살문이 서 있고 멀리 서원으로 들어가는 건물이 보입니다. 그냥 동네 양반집같습니다.

신라 시대 고운 최치원이 태산군수로 있을 때 그를 기리는 생사당(살아있는 사람을 모시는 사당)을 세웠고 상춘곡을 지은 정극인이 세운 향학당이 있던 자리로 옮겨서 '태산사'라고 했습니다. 그후 태인현감 신잠이 지역의 학문을 발전 시키고 떠나자 지역 유림들이 또 신잠의 생사당을 세웠는데 이 모두를 합쳐서 태산서원으로 발전 시켰어요. 1696년 숙종 임금이 "무성서원"이라는 현판을 내려 주어 사액서원이 되었습니다.

출입문인 "현가루"입니다. '현가'란 '예의와 음악으로 백성을 교화한다'는 뜻이랍니다. 동쪽문으로 들어가고 서쪽문으로 나와야합니다. 가운데 문은 신들의 문이라서 향사가 있을 때만 열어 놓는다고 합니다.

서원의 앞마당은 아주 고요했습니다. 커다란 은행나무가 서 있어요. 그리고 가운데엔 강당인 명륜당이 보입니다. 명륜당은 앞뒤가 트여 있어서 뒷쪽으로 제향공간이 다 보입니다. 참으로 검소하고 단정한 서원입니다. 그러나 .......

강당은 별도의 이름이 없었고 ,원장실이나 사무실에도 다로 이름을 붙이지 않았으니 그냥 명륜당입니다.

그러나 오랜 시간 내 마음에 깊숙하게 남아 있는 것은 이 건물의 아름다운 천정이었습니다. 구불구불한 곡선이 그려낸 그림을 봐주세요. 어느 목수가 이렇게 예쁜 집을 지을 수 있을까요? 한 마디로 말하면  "반해버렸습니다"~~~~~~

 한 사람이 쭈그리고 앉아 불을 때면 꼭 맞을 아궁이와, 바라보면 그저 좋기만할 사치한 구석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현가루와 작은 마당과 존경받는 저 세상과 살아있는 현세의 유생들이 막힘없음이 보냈을 시간들을 그려보세요.

내삼문이 열려 있는 곳은 무성서원 뿐입니다. 위패를 모신 곳에 들어가겠다는 것도 아닌데 내삼문도 못 들어가게 꼭꼭 닫아 둔 곳이 대부분입니다. 존경받을 분들을 외롭게 하지말고 좀더 가까이에서 그분들을 그려볼 수 있게 하는 것이 더 그분들을 잘 모시는 것이 아닐까요? 활짝 열어 놓은 무성서원의  제향공간에서 이곳을 운영하는 분들의 정신적인 수준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문화재는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더 가까이에 두고 잘 느낄 것인가를 .......

기숙사로 사용되던 "강수재"는 담장 바깥에 있습니다. 서원이 마을 가운데 있어서 기숙사가 그렇게 필요했던 것 같지는 않아 보입니다.  강수재 앞에 있는 큰 비석은 병오창의기적비인데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로 삼으려는 것에 반발하여 1906년 의병활동을 이 무성서원에서 발의한 것을 기념하여 세운 비석입니다. 서원 안에는 비각이 네 군데나 있었는데 서원건립 이후 서원과 관련한 인물의 공적 등을 기록한 기념비랍니다. "신용희 불망비, 서호순불망비, 최영대 불망비......." 등

정읍 사람들은 인정이 많은 사람들인 것 같습니다.  신라시대부터 아무리 훌륭한 군수였다 해도 살아있는 사람을 위해, 또 떠난 사람을 그리워해서 생사당을 세우고 이런저런 이들을 위한 불망비를 많이많이 세워 놓은 것을 보니까 말입니다.

어느 분이 찍은 무성서원의 사진을 보았습니다. 가을날 마당 한가득 은행잎이 노랗에 덮혀있는 모습을......

참 아름다운 서원이었습니다. 그리고 참 좋은 사람들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저 마음이 따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