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

화순 쌍봉사

연꽃마을 2016. 10. 8. 17:57

경내를 돌아보다 스님 한분을 만났습니다.

"돌아보시고 저~~쪽에 오셔서 차 한 잔 하고 가십시오"

친절하신 말씀에 감사했고 나중에 주차장까지 나오셔서 팜플릿도 챙겨 주시고, 설명도 해 주시고.....

'우리 절에 와서 숙박하지 그랬냐고' 아쉬워해 주시고,

문화재를 오래 보존하기 위해 애쓰고 계시고......

그런 스님들이 많았으면 참 좋겠네.^^

 

화순 쌍봉사는 구산선문의 하나인 사자산문의 초석을 놓은 철감 도윤선사가 계셨던 곳입니다. 철감선사의 제자인 징효선사가 강원도 영월 흥녕사(법흥사)에서 사자산문을 열었고 개산조가 되었지만 쌍봉사에서는 철감선사가 종조라고 합니다. 좋은 스승 밑에 훌륭한 제자가 나오는 법이니까요.

 

 

 

유일한 3층 목탑식 전각으로 된 대웅전은 반야용선의 돛대와 같은 뜻이라고 합니다.

대웅전의 석가모니 부처님의 협시로 가섭존자와 아난존자의 목각이 있습니다. 이러한 형태는 보기 드물거든요. 석가모니 부처님 행복하시겠네요. 열명의 제자 중에서도 어쩌면 가장 뛰어난 두 제자의 시봉을 항상 받고 계시니까요.ㅎ

살아생전에 부처님은 제자들의 시봉을 잘 안 받으려고 하셨다는데 아난존자는 사촌 동생이어서 그이 시봉은 받으셨다고합니다. 그래서 아난존자는 좋은 말씀을 많이 듣지 않았을까요?

 

 

  호성전은 T자형의 맞배지붕 건물로 유일무이한 형태의 전각인데 댓돌에 올라서면 넓은 마루가 있서 안으로 들어서지 않고도 참배할 수 있습니다. 쌍봉사가 조정의 후원을 받으며 왕실( 세조)의 위패를 봉안한 건물로 짐작된다고 합니다.

지금은 쌍봉사의 창건주 철감도윤선사와 중국의 조주 종심선사의 진영을 모시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절 가운데 조주선사 진영을 모신 곳은 아마 여기 뿐일 것입니다. 두 분이 20년 나이 차이가 있으나 좋은 사형 사제였나 봅니다.

지장전에는 지장보살님과 좌우에 민머리의 도명존자와  보관을 쓴 무독귀왕이 모셔져 있습니다. 중국 설화에 도명존자가 저승세계를 경험했을 때 본 지장보살의 모습은  머리에는 두건을 쓰고 육환장을 짚고 연꽃 위에 올라서 계셨다고 증언으로 하여 이런 지장 보살님 모습을 그리거나 만들기 시작했다고 해요. 지장경에 보면, 무독귀왕은 지장보살이 전생에 바라문의 딸로 지옥에 떨어진 어머니 열제리를 구원하기 위해 지옥을 돌아 볼 때 안내하여 준 분이 무독귀왕이었습니다.

그래서 지장보살님의 협시는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이지요.

지장 삼존 옆에는 지옥을 맡은 시왕들과 판관, 귀왕, 동자, 사자 등이 조각들이 서 있습니다. 아름다운 색상과 무늬인데 주지 스님께서 이 모양들의 본을 모두 떠 놓으셨다고 하네요. 여건이 허락하고 시기가 되면 다시 색을 입힐 때 좋은 자료가 되겠지요. 내다보는 안목이 있고 고마우신 주지스님이십니다.

 

이곳에 온 목적을 위해 국보 57호 철감선사 승탑을 보러갑니다.

산길을 따라 대숲에서 나오는 바람을 맞으며

꽃무릇이랑 물봉선을 보면서 사부작사부작 올라갑니다.

아! 오래 전 그 옛날 초의선사님이 이곳에 계셨었군요. 새벽에 이 길을 오르면서 22살 어린(지금 생각하면 어리죠? 스님 말씀이 요즘으로치면 마흔 정도의 정신 연령일 거라 하시더라구요) 나이에 집 떠나서 부모 떠나서 혼자 겪었을 외로움을 생각하니 이 시를 읽으며 가슴이 저리고 눈물이 났습니다. 무엇을 얻기 위해서 마음을 닦았을까요?

 

 

국보 57호 쌍봉사 철감선사탑입니다. 우리나라 통일신라시대 대표적인 8기 부도 중의 하나이지요.

승탑과 부도에 대하여 아래에 덧붙여 놓았습니다.

철감선사는 (798~868)18세에 출가, 성은 박씨이고 호가 쌍봉입니다. 825년 당나라에 가서 공부하고 범일국사(강릉 굴산사, 사굴산문의 개산조)와 함께 귀국하여 쌍봉사에 머물렀습니다. 돌아가실 때 입에서 오색광명이 나와 공중에 퍼져 나갔기에 서기만천철감선사라고 합니다 

 

나는,

옥개석 추녀 막새에도, 기왓골 끝 하나하나에도  작고 앙징맞은 연꽃무늬를 새겨 넣은 석공의 정성에 머리를 숙였습니다. 그래서 가장 아름다운 승탑이라고 하나봅니다.

1100년도 더 지난 석조물의 아름다움을 지금 이 시간에 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인가요? 살아서 튀어 나올듯한 사자들의 모습 또한 그렇습니다.

이 승탑은 철감선사님이 돌아가시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세원진 것이라고 하니, 아마 이 석공은 스님과 간절한 인연이 있었던 분이 아닐까요?

주지스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연곡사 승탑을 보거든 꼭 이 탑과 비교해 보라고........

더 자세한 사진은 국보바라기에 넣었습니다.

 

 

보물 170호 - 철감선사(798∼868)는 통일신라시대의 승려로, 헌덕왕 7년(825) 당나라에 들어가 유학하고, 문성왕 9년(847)에 범일국사와 함께 돌아와 경문왕을 불법에 귀의하게 하기도 하였다. 71세의 나이로 쌍봉사에서 입적하니, 왕은 시호를 ‘철감’이라 내리었다.
비는 비몸돌이 없어진 채 거북받침돌과 머릿돌만 남아 있다. 네모난 바닥돌 위의 거북은 용의 머리를 하고 여의주를 문 채 엎드려 있는 모습으로, 특히 오른쪽 앞발을 살짝 올리고 있어 흥미롭다. 머릿돌은 용조각을 생략한 채 구름무늬만으로 채우고 있다.
통일신라 경문왕 8년(868)에 세워진 비로, 전체적인 조각수법이 뛰어나며 특히 격렬한 거북받침돌의 조각들은 매우 훌륭한 경지에 이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오른쪽 앞 세 발가락을 달랑 들고 있는 것 아주 귀엽죠? 탑명은 징소탑이랍니다.

 

국립문화재연구소 홈피에서 가져왔습니다

부도는 부두(浮頭), 또는 포도(蒲圖), 불도(佛圖) 등 여러 가지로 표기되는 불타(佛陀), 또는 붓다(Buddha)의 전음(轉音)입니다. 어원상으로 본다면 불타가 곧 부도이므로 불상이나 불탑이 곧 부도를 가르키는 것이며, 원칙적으로 부도란 매우 넓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승려의 탑을 부도(浮圖)라 일컬은 예가 더 많으며, 같은 뜻의 승탑이란 용어와 혼용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즉 부도나 승탑은 모두 같은 의미로 승려의 유골이나 사리를 봉안한 묘탑을 일컫습니다.

불교에서는 세 가지 성스러운 보배인 불(佛), 법(法), 승(僧)을 숭배하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승보(僧寶)로 공경받는 덕망 높은 고승들에게는 평소 스님을 받들던 제자와 신도들이 스승의 묘탑과 함께 탑비를 세우기도 하였 습니다.

승탑과 탑비는 왕명으로 탑호(塔號)를 받았으며, 탑비의 비문은 당대 제일의 문장가가 글을 짓고 명필가가 글을 써서 비석에 스님의 행적을 새긴 것입니다. 이것은 곧 개개인 승려들의 행적은 물론이고 다른 승려와의 관계와 사적(寺蹟), 나아가 당시의 사회 및 문화의 단면까지도 알 수 있는 귀중한 사료(史料)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