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

화성 용주사

연꽃마을 2014. 10. 15. 14:14

 

 대한불교 조계종 제2교구 효행대본산 용주사, 경기도 화성시에 있어요

33관음도량 중 세번째입니다. 정조임금님께서 아버지인 사도세자를 천하 명당인 이곳에 이장하여 융릉이라하고 극락왕생을 기원하며 능침(陵寢)사찰로 용주사를 지었지요. 한양에서 80리 안에 왕를을 써야 하는데 이곳은 88리였답니다. 왕명으로 8리라고 고쳤다네요"자현스님의 사찰의 비밀에 나오는 글이 내용입니다"

조선은 숭유억불정책으로 불교를 배척하는 정책을 600년간 했지만, 자기 조상의 위한 기도에는 부처님의 힘이 필요했나봅니다.

용주사 팜플릿에는~~~~이렇게 정겨운 안내도가 있습니다. 

사천왕문입니다

 

 

 

 

부모은중경탑입니다

 

 

국보 12호 용주사 동종입니다  사실 나는 이 동종을 보기위해 용주사를 갔거든요

 

부처님 탄생 설화 벽화가 대웅보전 병에 장식되어 있습니다

마야부인은 흰코끼리 꿈을 꾸었습니다

 

마야부인 옆구리로 아기가 태어나서 일곱 걸음을 걸을 때마다 연꽃이 피어납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삼계개고 아당안지"라고 하지요.

생노병사를 보고 왕궁도 왕자 위치도 다 버리고 출가합니다

오랜 고행 끝에 드디어 깨닫습니다 

보리수 나무 아래 초전법륜의 모습이지요

열반에드셨을 때 마하가섭이 오자 발을 내밀어 보이십니다

진리의 수레바퀴를 굴리신 지 45년,부처님이 세수 80세가 되신 해에 아난 존자에게 이르시기를 "나는 이미 모든 법을 설했고 내 주먹 속에 감춰진 비밀은 없으며 내 육신은 이제 가죽 끈에 메여 간신히 움직이고 있는 낡은 수레와 같다" 고 말씀 하셨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당부하셨다.  "너희들은 자기를 등불로 삼고, 자기를 의지처로 삼으며, 법을 등불로 삼고, 법을 의지처로 삼아, 그 어떤 다른 것에 의지하지 말라"   부처님은 마지막 순간까지 제자들에게 의문나는 것이 있는가를 세 번이나 물으신 후 제자들에게 "모든것은 변하여
가니 게으르지 말고 힘써 정진하라" 당부하시고 생에 마지막 전법의 길을 떠나시어 쿠시나가라의 사라쌍수 아래에서 열반에 드셨다.
이 날이 음력 2월 15일 열반절이다.  부처님이 입멸하시자 왕들을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애통해 했다.  부처님의 다비식을 거행하고자 하는데, 뒤늦게 제일 큰 제자인 마하가섭이 와서 마치 살아있는 스승에게 존경의 예를 표하듯 부처님의 관을 세번 돌았다.
그때 부처님은 일곱 겹으로 된 관 밖으로 두 발을 내밀어 보이셨다.